간증

고통을 바라보는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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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홍 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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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가운데 스스로의 선택과는 관계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남 그 자체도 그렇고 어느 시대에 어디서 어떤 부모에게서
또는 부모를 알지 못한 채 태어나는지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전쟁이나 천재지변, 사고, 질병,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죽음 또한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이 없이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우리는 그 당시뿐만 아니라
때로는 일생을 두고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스스로가 내린 잘못된 선택의 결과 때문에도 고통을 당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스스로 고통당하기를 선택하는 것 같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선하시고 사랑이 충만하신 분인데 이 세상에는 고통이 왜 이다지도 많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고통이 없으되 인간의 자유와 선택의 존엄도 함께 사라져 버린 세상보다는
고통이 존재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의 엄숙성이 존재하는 세상을 원하시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또한 인간이 잘못내리는 모든 결정들을 하나님께서 미리 막아 버리심으로
악행과 고통을 예방하시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능하시자만 인간의 자유의지와 행동할 권리를 박탈하시면서 까지
인간을 선하게 만드시지 않으신다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그러나 인간은 때때로 고통이, 그것이 자신 스스로의 선택의 결과이던
어쩔 수 없는 외부환경, 자연의 법칙에 의해 생겨난 것이든 상관없이
우리가 하나님을 거절하면서 이 세상 것에만 안주하여 살고자하는
나의 주장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그분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으시게 하는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뜻에 순종하시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는 우리의 최대의 권리임과 동시에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는 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달라지게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스스로 고통의 길을 선택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언제까지나 고통을 통해서만 무언가를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일까요?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의 사랑이심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무조건 과잉보호 하지 아니하시고 아프더라도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대면하도록 하시는 그분의 배려인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을 이기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아버님 어머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저를 사랑하셨을 뿐 아니라 어떤 환경에도 굴복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의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저는 도저히 할 수없는 일들을 아무런 생색도 내지 아니하고
이 미련한 저를 위해 오래동안 변함없이 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이 시간에도 세계방방곡곡에서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주의 길을 가고 계시는 모든 분들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회복의 동지들을 사랑합니다.



자신에게는 선택이 없었던 출생의 비밀로 인해 한때는 괴로워했었을
가수 인순이의 Via Dolorosa가 오늘은 유독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선택하신 그 고통의 길을 묵상해 봅니다.



집에서 쉬는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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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연 10-05-26 11:07답변

"고통을 바라보는 고통" 요즘 제마음의 한편입니다.

어제 나다니엘의 간증은 어쩔 수 없는 환경의 결과 끝에 찾아오신 주님의 은혜이었습니다.
이제까지의 기초를 다 없애고 새로운 기초위에 주님의 설계대로 다시 짓겠다는 그의 결단,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또 제 마음의 다른 한편은 회복을 시작하고 또 계속하시는 분들을 바라보는 기쁨이 있습니다.
지난 십 수년간 저는 얼굴 반쪽은 웃고 반쪽은 우는 것을 계속해 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예수님의 고통이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찬양도 들어보세요.

http://www.youtube.com/watch?v=cfFDmsuUOTQ

서울 영락교회시온찬양대의 '그가' 인데
제가 지난 고난 주간 우리교회 성가대 찬양으로 듣고 많은 은혜를 받은 곡입니다.

그런데 볼륨이 아주 낮아서 컴퓨터의 볼륨을 높이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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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철 10-05-26 18:30답변

Via Dolorosa
 
예루살렘 돌로로사 그 마을에서는
좁은 길을 넓히려는 병정들
끌려가 죽음당할 한 남자를 보려하는 군중들

기사관을 머리쓰고 고통스런 그 모습
채찍의 상처에선 피가 흐르고
고통의 걸음마다 죽음 부르는 사람들의 함성
고통의 길 돌로로사 그 작은 마을에
양과 같은 예수 왕중 왕 주 예수
당신과 나에 대한 사랑으로 고통의 길 가네
고통의 길 돌로로사 갈보리 언덕으로

기사관을 머리쓰고 고통스런 그 모습
채찍의 상처에선 피가 흐르고
고통의 걸음마다 죽음 부르는 사람들의 함성
고통의 길 돌로로사 그 작은 마을에
양과 같은 예수 왕중 왕 주 예수
당신과 나에 대한 사랑으로 고통의 길 가네
고통의 길 돌로로사 갈보리 언덕으로

고통의 걸음마다 죽음을 부르는 사람들의 그 함성
고통의 길 돌로로사 그 작은 마을에
양과 같은 예수 왕중 왕 주 예수
당신과 나에 대한 사랑으로 고통의 길 가네
고통의 길 돌로로사 갈보리 언덕으로
고통의 길 돌로로사 갈보리 언덕으로 ...
홍종철 10-05-31 19:52답변 삭제 
한국 최고의 여성 가수로 인정 받고 있는 인순이 씨가 내달 18일 부활의 기쁨을 특유의 파워풀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인순이 씨는 부활절을 맞아 기독교 방송 CBS(사장 이정식)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개최하는 ‘인순이의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음악회에서 공연을 펼친다.

‘인순이의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인순이 씨가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처음으로 성가와 가스펠만으로 펼치는 무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이미 2장의 복음성가 앨범을 발표했던 인순이 씨는 이번 음악회를 통해 한국교회에 기독교인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각인시키겠다는 각오다.

이번 음악회에서 인순이 씨는 부활절 음악으로 가장 많이 사랑 받고 있는 ‘Via Dolorosa’ ‘Amazing Grace’를 비롯, 영화 ‘시스터 액트’에 삽입돼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Oh Happy Day’, 팝가수 휘트니 휴스턴이 부른 ‘Jesus Love Me’ 등을 열창한다.

이 밖에도 이번 음악회에는 조수미 씨와의 협연 오케스트라로 유명한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수퍼밴드, 그리고 대규모 연합 합창단이 참여해 부활의 감격을 더욱 배가시킬 예정이다.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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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철 10-05-31 20:32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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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순이가 찾아낸 아버지 ♧



피부가 가무잡잡한
가수 인순이를 나는 좋아한다.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밝게 활짝 웃는 순한 웃음과
우주 전체를 진저리치면서 꿈틀거리게 하는
그녀의 생명력 넘치는 가창력과
열정적인 발랄한 율동은
내 가슴을 뜨거워지게 하곤 한다.

그런데 그녀의 노래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에 쏴 하고 몰려드는 아릿함이 있다.

우리가 안고 있는 6·25전쟁의 상흔(傷痕)하고
맥이 닿아 있는 까닭일 터이다.

그녀의 미국 공연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한번 읽고 나서, 눈을 씻고 다시 읽었다.

내가 놀란 것은
그녀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1999년도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공연을 펼치는
뉴욕의 대표적인 명소,
맨해튼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6·25전쟁 발발 60년을 맞아
참전용사 100명과
16개 참전국 유엔 주재 대사들을
공연에 초청한다는 사실 때문에 놀란 것도 아니다.
그녀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 때문이다.
저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6·25전쟁 참전 용사들을
모두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번 공연에서 그분들께
한국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자식들에대한 부담감을
평생 가지고계셨다면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놀란 것은
참담한 6·25전쟁 당시
주한 미군이었던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가 당당하게 뱉은 이 말 때문이다.

“우리 군인들이 베트남에서 그랬듯이
사랑은 아무런 이유 없이,
전쟁터에서도 싹틀 수 있잖아요.”

그녀의 흑인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죽었을지 모르고
지금 미국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흑인 아버지가 한국의 여인과 나눈
잠깐의 사랑으로 인해
그녀는 태어났는데
그녀는 그 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리는
아직도 남북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상흔을 가슴에 품은 채 사는 황색인종이다.
아직도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환상에 젖어 있다.

그러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온
혼혈 아이들은 얼마나 놀림을 받으며
외롭고 슬프게 살았는가.

그녀 또한 예외는 아니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보적인 가수로서
오늘의 성공을 이루어낸 것은
한 인간의 슬픈 승리이다.

그녀가 한 말은 자기의 슬픈 고백이자,
그녀를 낳게 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당당한 용서와 화해이다.

“저는 6·25전쟁 참전 용사들을
모두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나는 가수 인순이의 신화적인
아버지 찾기라고 읽었다.

가령 홍길동은
자기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부르기 위하여
목숨 걸고 투쟁을 했고,
그리하여 아버지 찾기에 성공을 거두었다.

어머니가
감성적인 밭이라면
아버지는 이지적인 씨앗이다.
아버지는 신(神)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한 인간이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기 위해 분투한다는 것은
자기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하려는 것이다.

자기를 버린 아버지,
아니 자기라는 존재가
한국 땅 안에서 자라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모르는 아버지를 용서하고
그 아버지와 화해하는 일은
오직 가슴이 우주를 다 포용할 수 있도록
광활해진 당당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광활한 가슴으로
세상을 용서하고 화해한 만큼,
그녀는 앞으로 더욱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을 터이고,
그 노래는 한 개의 슬픈 신화가 되어
듣는 사람의 가슴을 울릴 것이다.

그녀의 노래는
전쟁으로 인한 상흔을
어루만져 줄 것이고,
다시 또 그러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만방에 전해줄 것이다.



< 글쓴이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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