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간증: 2년: 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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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 간증의 한국어 통역입니다. Sean 형제님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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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에 저희 부모님들 께서는 누나를 대리고 미국에 이민을 오셨습니다.
저는 아리조나에 있는 플래그 스태프 라는 곳에서 1977년 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제가 태어난지 두달 되었을때 저희 가족은 북가주 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저는 안티옥 에서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12 살이 되던해 우리는 또다시 오레건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저는 캘리포니아를 그리워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크면서 사귀었던 모든 친구들이 캘리포니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소년 시절은 비교적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부모님들께서는 많은 argue 를 하시는 편이었지만
그외에는 딱히 충격적인 일은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14살이 되던해에 저는 술과 마리화나를 접하게 되었고 저는 학교를 빠지기 시작 하였습니다.
제가 주니어 하이 를 다닐때 몇번에 싸움을 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인종차별 때문이었습니다.
9학년 에서 10학년 사이 저는 학교에 대한 관심을 잃기 시작했고 저는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제가 18살이 되던해에 저는 처음으로 직장을 다니게 되었고
그일은 컴퓨터 부품을 조립하는 일이었습니다.
저의 누나가 결혼을 해서 북가주로 이사를 한, 같은 해에 저희 부모님들은 이혼을 했습니다.
제가 19살이 되던해에 어머니 와 제 여동생은 북가주로 이사를 했고 저도 조금 후에 이사를 했습니다.
제가 스무살이 되던해에 저는 경비원 직업을 얻게 되었지만 마리화나는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중 저는 마약인 메드 를 하게 되었고 경비원 직업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한 일년 동안은 메드를 매일 하였고 저는 오레곤 으로 다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일을 하게 되었지만 술을 가끔 먹게 되었고 마약도 가끔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저는 집으로 찾아온 경찰에게 강도 혐으로 잡히게 되었고,
그것은 제가 강도짓을 하고 난 이주 후였습니다.
저는 놀라서 당황하게 되었고 나중에 오레곤은 강도 행각을 벌였을때에
7년 반을 의무적으로 교도소 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결국 교도소에서 8년 3개월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이유는 카운티 에서 있었던 시간을 쳐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카운티에 들어갔을때 저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었고 쇼크를 받았었는데
그것은 제가 교도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그 교도소에 갔을때에는 저의 생각 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생각 하던 것 보다는 그래도 낳은 편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있을때 문제들을 피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자기 관리를 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종교 모임을 가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찾기 시작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했지만 하나님을 믿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되었었습니다.
제가 자랄때에 교회를 다니기는 했지만 그렇게 많은 시간을 성경을 읽는데 활용 하지는 않았었고
기도도 그렇게 까지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교도소에 있게 되면서
많은 시간을 성경봉독을 하게 되었고 기도도 하게 되었었습니다.
그렇게 교도소 생활을 하다 마지막 3년 이 남았을때에는 경비가 제일 약한 레벨 1 으로 옮기게 되었고,
그곳은 더 많은 특권이 있는 곳 이었지만 저는 하나님 과의 관계를 멀리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교도소에 있었을때 저희 가족은 엘에이 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도소 에서 나온후 저는 캘리포니아로 가석방을 신청 햇지만 거절 당했고
한달에 400불을 내는 sober living home 에서 생활을 시작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a.a 와 n.a 미팅을 가게 되었지만,
술과 마약을 한지가 너무나 오래 되어서 미팅에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몇달이 지난후 저의 가석방 감독관 이 저를 불러 가석방 제도를 엘에이 에서 할수 있게 해주었고
2008년 2월에 엘에이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가페 홈 이라는 재활원에 들어 가게 되었지만 재발을 하게 되었고
2010년 까지 술과 마약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협박 혐의로 교도소를 다시 가게 되었고 2012년 에 나오게 되어
술과 마약 으로 부터의 재활 프로 그램을 가게 되었습니다.
2015년 까지 다른 프로그램들에 있었고 몇달후 저는 그프로그램들을 떠나게 되었고
그결과 카운티 감옥에 몇번을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족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그것은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지만 저의 과거의 실수를 받아들이는 일을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일 미팅을 가는 일이 많은 도움이 되었고, 그곳에서 다른 점 보다는
비슷한 점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미팅에서 저의 경험과 마음을 나누는데 있어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고
또 그것이 제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과제 입니다.
마약 과 술 생각이 예전 만큼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완전히 없어 지지는 않았고
지금 저는 6단계를 하고 있으며 직장을 찾는 과정에 있습니다.
감사의 집에 있는 형제들 과 홍장로님께 감사를 드리며
이렇게 저의 간증을 나눌수 있게 해준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8-10-04 13:28:08 자유 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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