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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G.G.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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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알코올중독자 김광길입니다.
영어 이름으로는 제임스 김입니다.
드디어 오늘이 오고야 말았군요. 오늘 여기 서기까지 많은 고통과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정말 힘든 하루 하루였습니다.

이 간증을 정리할 때 또 다시 한번 4단계와 5단계를 되풀이 하는듯 해 몹시도 힘이 들었습니다.
저는 1956년 4월 봄 꽃들이 흐드러지게 필때 10일날 ‘깡’좋게 첫닭이 울기도 전에 제가 먼저 새벽을 울리며 서대문구 아현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부모님은 두분다 이북분이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고향이 평남강서시구요, 어머니께서는 황해도 해주였습니다.
두분께서는 타향살이에 적응하기 위해 무척 애쓰시는 분들이셨고, 생활력이 강한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제 아버님께서는 대한민국 발명특호 1호인 ‘인조석’ 특허를 받아 서울 명동과 종로, 불타없어진 구 시민회관등 많은 곳에 작품들을 남기셨습니다.

저는 학과 전공이 토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집안이 모두 건축쟁이였기에, 저를 토목을 전공시켜 완전한 쟁이 집안으로 만들려는 어른들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토목이라는 일이 적성에 맡지 않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방송일을 시작했습니다. 연애인들을 데리고 다니며 라디오, TV등에 출연시키며 바쁘게 그리고 재미있게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90년 초, 방송 PD사건으로 세상이 뒤집어 지면서 그만 이일도 접어야 했습니다. 그후 광고 회사를 다니다 또 그 광고회사마저 부도로 망하면서 우리 가족은 94년 10월 무작정 미국으로 들어 왔습니다.

미국에는 10여년전 애나하임 리코스토어 총기 사건으로 인해 돌아가신 처 사촌 오빠가 계셨습니다. 처 오빠는 한국에 MBC방송곡 예능국 부국장까지 지내셨던 분이였습니다.
그 동안에 저는 교회 집사님 한분의 권유로 페인트 일을 시작했고, 페인트 뿐만 아니라 핸디맨, 목수일까지 해낼수 있는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기가 않좋아지면서 일을 쉬게 되는 날이 많아지면서 이 시기부터 저는 술을 벗삼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국에서 무너저내리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아버님께서는 새벽기도 가시다 술취한 사고를 당해 주님곁으로 가셨고 어머니마져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어찌할바를 몰랐습니다.
아들 돌아와 같이 살날만을 손꼽아 기다리시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저는 제 신분상문제로 한국으로 갈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어머니의 장례식을 남의 손에 맡겨야 한다는 현실이 저 자신뿐만 아니라, 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생각조차 잊어버리려고 하루종일 넉이나간 사람처럼 술로 달래고 그 술이 또 술을 부르는 반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자 술중독이라는 병마가 저를 지배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술기운이 떨어지면 불안과 초조로 떨어야했고 발과 몸에는 송곳으로 쑤시는듯한 극심한 고통으로 시달리며 잊기위해 또 다시 술을 마시고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폐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손이 떨리고 몸은 나도 모르는 사이 앉아있다 일어 설수도 없는 지경까지 와 버렸습니다.
185파운드 몸무게가 무려 65파운드가 빠진 120파운드가 되더군요!
아이들은 집 밖으로 돌게되고 경제력마저 없어진 나는 집안 생활은 뒷전이고 그저 술만을 생각하는 생활이 계속되었습니다.
술 마실돈을 마련하기 위해 평소의 아는 사람들을 찾아가 거짓말과 위선은 물론이고 가정과 가족에 대한 문제는 남의 일처럼 되어갔으며 경제적인 어려움과 술문제로 자주 생겼던 부부갈등은 아이들에게로 불똥이 튀고 급기야 집을 나가버리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집사람은 평소에 꺼내지도 못했던 말들을 마구 쏫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이혼 하자는등 심지어 욕설까지 서슴없이 퍼부어 댔습니다.

이제는 올때까지 왔다.
순간 화를 못참고 살림살이까지 부수는 행동까지 서슴없이 하였습니다.
이로인해 주변의 신고로 경찰이 3번씩이나 찾아왔고 그때마다 멋진 연기로 태연한척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그러나 네번째 경찰출동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수갑을 차고 경찰서가 아닌 병원으로 직행하더군요. 그것도 정신병동으로 말입니다. 다행히 그 병원에는 한국의사와 간호사들이 있었기에 또 한번의 위기를 모면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살던 아파트를 나도 모르는 사이 계약을 취소시켜 오갈곳도 없는 저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경찰과 아파트메니저가 와서 퇴거명령까지 했으나, 그 아파트에서 5개월 이상을 살았기에 약 2주 정도의 시간을 얻게 되었습니다.
비록 2주간의 시간은 얻었으나 어디로 가야할지 친척집 하나없는 저로써는 그저 앞이 캄캄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때 어떻게 아셨는지 은혜교회 제직중이시던 안동옥목사님이 오셔서 은혜기도원에서 실시되는 ‘그레이스 후리덤’이라는 프로그램을 추천해 주셔서 저는 두말없이, 아니 일단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기도원으로 올라간 2박3일동안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 커녕 여기까지 몰고간 가족들과 나 자신에 대해 화가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그냥두지 않겠다는 분노를 억제할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어도, 누군가가 나를 실망시켰더라도 나의 원래 신분에는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강의를 듣기 위해 은혜교회로 돌아왔습니다.

거기서 저의 모든 것을 바꿀수있는 분을 만났습니다. 홍종철장로님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아이고, 잘못 걸렸구나 이제 여기서 끌려가면 나는 끝이다. 아마도 말로만 듣던 수용소 같은 곳이겠지!’ 하며 온갖 추측이 머리속을 뒤섞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곳은 어떤 곳인가요?하고 여쭈어 물었습니다.
장로님 말씀이 여러 중독자분들이 모여 회복하는 곳이라 했습니다.
퍽 자유스럽고, 컴퓨터도 있고, TV도 마음대로 볼 수있고, 그곳에 룰만 잘 따르면 아무 문제 없다며, 빙그레 웃으시고 저를 힐끗 보시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드디어 감사의 집에 도착해보니 그냥 여느 하우스였습니다.
너무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그날 저녁은 형제들이 만든 국수로 대접받고 처음 접해보는 하우스미팅까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날이 2010년 3월 13일이었습니다.
이제 제가 감사의 집에 들어온지도 1년하고 십이일이 지났습니다.

그동안의 일들이 바로 어제일처럼 생각되어집니다. 많은 형제들이 들어왔다가 쓰러져나가고 심지어 한잔술을 참지못해 몰래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고 그리고 다시 한번 회복의 기회를 얻어 들어와 열심히 생활하는 형제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힘차게 걸어갑시다. 문이 닫혀 있어도 위대하신 힘께서는 더크고 좋은 문을 열어 주십니다. 어려운 시절을 빨리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보고 싶다면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려고 최대한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불행한 일이 벌어져도 자신외엔 누구도 탓할수 없습니다. 나를 무너뜨리는 것은 바로 나의 생각과 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산이 너무 크다고 불평하지말고, 그 강이 너무 넓고 깊다고 불평하지말고, 그 산을 넘으려는 노력과 강을 건너려는 최선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집 생활에서, 저는 많은 생각과 많은 경험을 하게되었습니다. 바로 단계를 쓰는 것과 미팅이었습니다. 이것이 저도 모르는사이 바른 판단과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4단계를 할 무렵 홍장로님께서는 T.D.에 켄디데잇으로 참가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G.T.D. 150기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올라갈 당시에도 몸이 좋지않아 형제들의 걱정이 많았습니다. 과연 T.D.에 올라가서 모든 스케즐을 소화할 수 있을지 도중하차나 하지 않을지 걱정들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좁은 생각속에 가두지마라. 그보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자신의 꿈을 마음에 품고 계속 밀고나갈때 믿는대로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G.T.D. 150기를 치루는 동안 저는 평안한 마음으로 보내며 많은 은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T.D.에서 기도하던 중 저에게 이런 말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남을 해하지 말고 네가 죽어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사랑할 줄 안다. 마음에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고, 꿈을 포기하지 말고, 좌절과 낙심으로 인해 너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라. 노력을 겸비한 믿음이면 틀림없이 행복이 찾아온다.’라는 말씀이 기도 채플실에서 기도로 묵상할 때 저의 가슴에 꽉 채워졌습니다. 이순간 모든걸 털어버린 것처럼 홀가분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우리 가족과도 과거 따위는 다 잊고 서로 용서하고 힘 합해 잘살게 해달라고 진심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어느덧 T.D.의 은혜충만한 시간이 끝나고 무사히 감사의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집사람이 보내온 메일한통 이혼서류였습니다. 저는 그저 그 서류를 보는 순간 웃음밖에는 나오질 않았습니다. 왜? 왜 이래야 되는지, 중독자에다가, 능력없는 인간들은 이꼴을 당하고 살아야 하나?
게다가 붙어온 서류한장 접근금지 명령서!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뭐! 아름다운 부부관계와 성장과 풍요를 믿으라. <뭘, 믿어! 믿기는 개뿔이다!!!!!!>
또 뭐! 믿음대로 될 줄알고 진정한 믿는자가 될때 그 믿음대로 부부관계와 가족관계가 이루리라! <웃기고 있네! 별 개 뼉다귀 같은 소리를 다하고 있네….> 같은 갖은 욕설을 퍼부어 댔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좌절과 배신감에 감당할 수 없는 시간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동안 형제들의 위로와 심지어 홍장로님의 말씀까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떻게하면 정말 보기좋게 복수하느냐? 정말 통쾌하게 끝을 내버리느냐? 하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이다. 은혜고 믿음이고 다 버리고 한꺼번에 다 죽자! 이 개같은 세상 죽어버리면 정말 홀가분 하겠다는, 막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중 어느날 허탈한 마음으로 허공을 묵시하고 있는데, 먼 기억인지 말씀인지 모르는 것이 가슴속으로부터 떠 올랐습니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너를 꼬리가 아닌 머리로 만들었고, 패배자가 아닌 승리자로 보시며, 그러므로 모든것이 너 자신에게 달려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언제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한 존재로 만들었으며 하나님께서는 너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니 스스로 포기하지 말아라. 과거의 울타리에 너무 오래있지말고 이제 거기서 나와 가만히 앉아서 그저 그런 반복적인 삶에 이끌리지 말고 소극적인 삶에서 벗어나라고…..

그리고 오늘을 온전히 살려면 용서가 우선이다.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떠나 보내라. 원망이 뿌리를 내리게 놔두는한 행복한 삶은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잠시나마 평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뿐 그리움이 가득한 연민의 정이 점차 분노로 바뀌곤 하였습니다. 어느땐 정말 모든걸 포기하고 옛날로 돌아가고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였습니다. 한 잔 찐하게 마시고 모든걸 잊어버리고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고나면 나는 이제 끝나는 것이다. 잠시의 평온과 쾌락을 즐기고 고통을 잊으려 나를 포기할수는 없다. 내일이면 더욱 큰 고통과 후회의 어두움이 밀려올거라는 것이 많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그리고 창문 브라인더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을 보며 흘리던 눈물이 벼게닢을 적시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무렵 홍장로님께서 G.T.D. 152기 팀 멤버로 가서 봉사 해봄이 어떠냐고 하셨습니다. 드디어 2월 6일 G.T.D. 152기 팀멤버로 섬기로 갔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사실을 알았습니다. 캔디데잇 한분 한분을 위해 식탁에 수많은 정성이 간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숫가락이 놓이는 방향, 포크가 놓이는 위치, 나이프가 있어야 할 자리, 설탕, 프림, 소금, 후추가루 통등이 테이블 위에 놓이는 모든 것이 정성 그 자체였습니다. 심지어 상표가 어느방향으로 향해야 한다는, 지엄하신 팀장님의 말씀까지 있었습니다. 그리고 커피와 음료 써빙, 조금이라도 식사에 불편함이 없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었습니다. 감사의 집에서 간 팀멤버들은 L.A.에서 온 천사라는 칭찬까지 받았습니다. 이어지는 켄디데잇을 위한 가드 찬양파티 등 하루하루 웃는 얼굴에서 은혜스러운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켄디데잇분들의 모습을 볼때 또 한번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루일과가 끝나면 목사님이하 장로님들을 위시해 밤늦게까지 모두모여 기도와 찬양으로 시작해 하루의 수고를 서로 위로하였습니다.

여기서 정말 남을 위한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큰 은혜로 저에겐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더 가슴아픈 사연을 안고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의 내면에 품고 있는 원망은 결국 나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을 어렵게 할뿐 아니라, 나 자신의 인격과 태도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까지 모두 망가뜨리고 만다는 것과 실망감은 결단없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이미 지나간 상황때문에 속을 끊이는 부정적 태도는 버리고 바꿀수, 없는 문제가 아닌 바꿀수 있는 문제에 촛점을 맞추고 과거에 대한 후회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파괴할 뿐이기에 이미 어제는 지났고 내일도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을 위해서 충실하며 현재 있는 곳에서부터 출발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 치료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길 바란다면, 밖으로 눈길을 돌려 다른 사람의 회복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상황을 오히려 씨앗을 뿌릴수 있는 기회로 삼으며 신세를 탓하기보다 어떤 씨앗을 뿌릴지 고민할 때, 우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주저앉고 싶은 유혹이 들 때마다, 나 자신에게서 남을 돕는 일로 관심을 돌릴 때,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씨앗의 대상은 멀리 있지않고, 가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형제일수도 있고, 또 가족일수도 있으며, 가까이 있는 이웃일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를 너무나 필요로 합니다!

저는 영원한 길갈 식구로써, 감사의 집 형제일원으로써, 그리고 주님께서 이 사역을 맡겨 종으로 세우신 홍종철장로님, 홍연권사님과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큰 장애물 뒤에는 큰 성공이 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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