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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간증: 1년: Ed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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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형제님: July 24, 2018


아래는 이 간증의 한국어 통역입니다. Sean 형제님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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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의 중독이 제가 첮 한모금을 피우기 전에 이미 시작 되었다고믿습니다.
제가 어렸을때에는 비디오 게임에 빠졌었고 상상속에 장난감
세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둘다 만족을 할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탈출구를 찾고 있었죠.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서 모범생이 되기 싫어했는데 그것은 똑같은 상을
위해서는 의욕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슴속에 채워지지 않는 구멍을 저는 채우고 싶었었죠.
저는 한번에 세네 시간을 게임하는 데 썼고 게임을 하기 위해서 학교를
빠지기도 했습니다. 제 부모님들은 제가 정확히 어디 있는지를 항상 알고계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인터넷 카페에서 게임을 하고 있을때 저의
부모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었습니다.
제가 학교를 또 빠진것 때문에 걱정을하고 계셨었죠.

제가 12 살때 인터넷 과 게임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부모님들과 12단계
미팅을 간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저의 12단계의 첫경험 이었습니다.
저의 어린시절에는 제자신이 이상한 왕따 아이라는 기분을 가지고살았습니다.
아는 친구들은 많았지만 진짜 친구는 사귀지 못했습니다.
외로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제 기분은 항상 그랬었습니다.
저는 항상 감정이 고조된 분위기 의 가정에서 커왔었고
저의 부모님들은 이민생활에 적응을 하는 삶을 살고 계셨습니다.
저는 다루기가 힘든 아이여서 어쩔줄 모르셨던 부모님들께서는 속만
태우시다 저를 훈련 시키려 하셨습니다.
특별히 어머니께서는 저를키울실때 더욱 힘들어 하셨습니다.
제가 공부 보다는 노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것 때문에 부모님들은 걱정을 많이 하셨었죠.
저는 다른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놀때 저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곤 했던 것 처럼 말이지요.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다른 책을 읽곤했습니다.
현실에서 도피 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제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때, 저는 분출구 가 필요 했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처음 한모금을 피우게 될수 있는 좋은 조건 이었죠.
저는 대마초를 찾았습니다.
SAT 를 준비 해주는 학교에 같이 다니던 친구가 저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비가 오던 날이었습니다. 제친구가 대마초를 같이 피우자는 설득을 하게
되었고 저는 거기에 넘어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약 종류는 싫어했지만 대마초 정도는 괜찮을 거라 생각이 들어서 하게 되었습니다.
한모금 정도는 괜찮을 거라 생각 했었죠.
그러나 그 한모금 후부터 저는 그것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환각에 빠지는 기분을 사랑하게 되었죠.
저의 기분은 마치 다른 세상에서 구름을 나는 기분이였습니다.
모든게 천천히 돌아갔었고 세상이치를 이해 하기 시작한다고 느껴졌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기분에 빠지는것을 사랑하기시작했습니다.
다른 차원의 세상에 가있게 되었고 제가 찾고 있었던
평안함을 찾았다고 생각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후로 부터 7년 동안을 거의 매일 이러한 생활을 했기 때문이죠.
제 인생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저의 이 중독의 금전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 친구들에게 대마초 과자를 팔기 시작했고,
이것때문에 많은 친구를 잃었습니다. 제가 팔던 브라우니가 제가 친구들 한테
말한것처럼 강하진 않았기때문이죠.
저는 그냥 매일 제가 필요한 대마초를 살수있는 돈만 필요했었습니다.
부모님들이 일을 가시고 나면 저는 집에서 대마초 과자를 만들곤 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들도 바쁘셨기 때문에 학교만 다녀오면 그 후에는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게으름을 피우며 제가 기분 내킬때마다 학교 수업을 빠졌습니다.

제가 대학을 갔을때에는 파티를 심하게 다녔습니다.
제가 학교를 캘리포니아 있는 학교로 정하게 된것도 캘리포니아 안에만 있으면
지구상에서 제일 좋은 대마초를 항상 구할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캘리포니아 중앙에 있는 파티가 많은 학교를 갔습니다.
대학을 가게된 저의 목적은 오로지 대마초 와 여자를 만날수 있기
때문이었고 엘에이 에서 가까운 대로 정한것도 자주 올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부모님들의 관찰에서 더욱 멀어진 저는 제가 원하는 대로 대마초를 피울수 있었고
학교에서 술에 너무 취해 블랙 아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관심은 어떡해 하면 더 많은 파티를 할수 있었냐는 것이었고,
제 생활 습관을 맟히기 위해 전공 과목도 정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항상 대마초를 피울수 있었고 주말에는 파티를 갈수
있었기 때문이였죠.
대학 3학년 때에는 화요일 과 수요일 그리고 목요일에만 들을수 있는 과목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야 목, 금, 토요일에 파티를 갈수 있었기 때문이죠,
저의 모든 돈은 대마초 와 술로 쓰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대마초에 너무 취한 상태에서 수업을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 제가
복용한 양은 중력 대마초 기구로 한모금 피우고 두개의 대마초 브라우니를
먹었으며 다시 낱개 대마초를 피운 상태 였습니다. 너무 많이 취해있었지만
수업을 들어가야만 했기 때문에 가게 되었고 겨우 시간을 맟추긴 했지만
결국 화장실에 가까스로 나가서 모든 것을 구토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은 대마초를 조인트로 만들어 피우는 것이였습니다.
보통 때는 블런트를 만들어 피우곤 했었고 항상 저와 같이
파티도 다니고 대마초도 같이 피우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 과의 관계도 유지를 할수 없었습니다.
여자 친구를 임신 시킬 번도 했었습니다.
친구들 과 가족들로 부터 멀어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관심은 그저 어떡해 하면 high 를 할수 있는가 뿐이었습니다.
누구에게 피해를 입히든지 상처를 주던지 상관이 없었습니다.
저에게 대마초만 있다면 어디에 있던지 상관이 없었습니다.
저는 메디칼 카드까지 만들어 제가 아픈사람인것을 증명하여 의학적으로
허가를 받아 대마초를 피우기 까지 했습니다. 저의 영혼은 병을 앓고 있었고
저는 그것을 의학적으로 풀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4학년이 될때쯤에는 정신이 이상해 지기 시작 했습니다.
편집증 환자 라는 진단과 조현병의 진단을 받기까지 되었습니다.

저는 망상에 빠져 제가 미국에 큰 지배층에 리더가 되어 사람들의 본이
될거라고 착각 했었습니다.
또 어떨때는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를 받아
핵으로 인한 종말이 올때 사람들을 안전함으로 인도 하는 인도자가
될거라고도 망상을 했었습니다. 3 과목만 더하면 졸업을 하게 되었을때
저는 학교를 쉬어야만 했습니다. 제가 학교에 있었던 이유는 학자금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럼으로 인하여 일도 안해도 되고 수업도 마지막 쿼터
까지는 안가도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제 대학에서 일안하고 살면서
마약을 하기 위해 이점을 이용했었던 것입니다.
대학생활 1년이 지난후 저는 job 을 잡았지만 다시 잃게 되었습니다.
더욱 복잡한 삶을 살게 되었고 은행 어카운트를 완전히 비우게 되었으며
그것이 마귀를 쫓아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환상에는 하나님이 저를 한국에 보내어 기적을 이루셔서 만불을
저의 은행 계좌에 넣어 주실줄 알았습니다.
저는 계속 돈을 썼고 학교에 까지 가서 경찰과 소란을 피워
경범죄에 걸려 하룻밤을 경찰서에서 보내기 까지 했습니다.
제 정신은 더욱 안좋아 져서 제생각에는 악마가 저를 잡으려 하는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저에게 들리는 환청의 목소리가 예수님이 저를 가리키시는 목소리 인줄 알았고
그러한 저의 이상한 행동을 알아차리신 부모님들께서는 제가 병원을 가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병원에 가기를 거부했고 제가 필요한 것은 오직 대마초 뿐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러한 상황에서 부모님들은 경찰을 부르는 결정을 하게 되었고 경찰들은
저를 정신병원에 넣게 되었습니다. 저는 차츰 내머리속에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제가 정신병원을 두번 다녀온 후에나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중독자이고 정신병까지 앓고 있었습니다.

제가 정신병 진단을 받고 난후에 저는 부모님들 집을 다시 갈수 없었고,
일과 집을 다 잃은후이기 때문에 감사의 집 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새로운 바닥이 되었습니다.
저는 동지애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고 또 어떡해 회복을 해야 하는지를 배웠으며
미팅을 계속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감사의 집에서 6개월을 생활했으며 제가 도저히 더는 견딜수 없었을때
부모님들께 집으로 가게 해달라고 애원을 했었고 부모님들께서는 조건을 거셨는데
그것은 부모님들 가게에서 일을 하는 것이었고,
또 한가지는 다른 정신병진단을 받은 사람들처럼 똑같은 활동을 하는것이었습니다.
다행이도 좋은 정신과 의사분을 만나 지난 일년 동안 그래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수 있는 약을 처방받아 무사히 생활을 할수있었습니다.

저에게 일어난 모든일들을 통하여 저는 여자나 돈 그리고 권력같은 것들은
저를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힘든 일이 있을때 누구를 의지 하여야 하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그모든것을 저에게서 가져가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을 사랑으로 같이 해주신 부모님들이 있다는것은
값을 헤아릴 수 없는 귀중함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만을 의지하는것 외에는 이세상에 그 어떤것도 저를 행복하게 할수
없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모든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역사
하실수 있도록 하는것에 대하여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저의 현 소망은 하나님의 크신 계획에 제가 사용되는 것입니다.
회복은 내면의 작업입니다.
회복은 저에게 힘든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산타 모니카 대학에 현재 재학중입니다.
제가 있던 자리로 다시 돌아가고 있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려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불평불만을 안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왜냐하면 다시 중독생활로 돌아가게 될경우 모든것을 잃게 되고
감사의 집 신세를 지게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전공을 끝내고 학위를 얻으므로 성공한 삶을 만들고 싶습니다.
1년 이 넘게 걸리겠지만 마약으로 부터 자유스러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항상 확신이 있는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뜻을 쫓아서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조금씩 부모님들과의 관계도 회복 되고 있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원이 되는것에도 기대를 갖고 살고 있습니다.

길갈 미팅에 나올수 있는것은 복이라고 생각이 들고,
감사의 집 식구들과 같이 할수 있고
홍장로님의 인도를 받는것은 저에 회복에 큰 힘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 분들의 지원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8-08-08 15:19:04 자유 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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